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온화한 정책을 써 오던 정조가 1800년 8월 18일 승하하였다. 이어서 순조가 11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55세의 나이로 수렴청정을 시작하였으므로 정순왕후의 친오라버니 김귀주(이미 1786년 사망)가 주축을 이루었던 벽파(僻派)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벽파는 남인 시파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정순왕후를 움직여 언교(諺敎)로 박해령을 선포, 전국의 천주교도를 수색하며 탄압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천주교 신부이자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중국인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를 비롯하여 초기교회의 지도자이던 이승훈, 정약종(다산 정약용의 형), 여성 평신도 지도자인 강완숙 등 박해 피해자는 신도만도 300명이 넘었다. 오가작통법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
* 언교(諺敎) : 언문으로 쓴 왕후의 교서
* 정조(正祖, 1752년~1800년) : 조선의 제22대 왕, 재위: 1776년~1800년
* 순조(純祖, 1790년~1834년) : 조선의 제23대 왕, 재위: 1800년~1834년
* 벽파(僻派) : 사도세자의 추숭에 반대하면서 정조의 정책에 반대한 정파
* 시파(時派) :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한 세력
*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 조선에서 시행된 행정 구역 체계이며 세조 때 실시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 5개의 호(戶)를 1개의 통(統)으로 구성하고 리(里)는 5개의 통(統)으로 구성하며 면(面)은 3~4개의 리(里)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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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여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회는 전국적으로 1만 명 내외의 순교자를 탄생시켜야만 했다. 특히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이래 187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으며, 그 중에서 44명의 순교자는 1984년 5월 6일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선포된 103위 성인가운데 포함되었다. 이로써 서소문 밖은 성인 44명이 순교의 영광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요, 또 다른 성인을 낳게 될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다. 이에 한국전주교회는 1999년 이곳 서소문역사공원에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다.
- 천주교 서울대 교구 -
[촬영일 :2021-03-10]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형틀로써 '칼'을 형상화한 15미터의 화강석 3개의 탑은 죽음과 박해를 상징한다. 주탑과 좌우탑 윗부분의 원형 형틀에서 흘러내리는 7개의 금빛 선은 순교를 통한 하느님의 은혜(7성사)를 상징화하였다
[촬영일 :2021-03-10]
뚜게우물터 : 우물에 뚜껑을 덮은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서소문밖의 순교터로 사용되면서 평상시에는 우물의 덮개를 덮어두고 있다가 망나니가 사람을 처형하고 나서야 두껑을 열고 칼을 씻었다고 전해진다. 우물이 크고 깊으며 물의 양이 많아 늘 흘러내렸으며 식수해결을 담당하던 상수도 시설이었다고 한다
1622년에서 1890년 사이에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던 미국 백인 정착민과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사이의 정복 전쟁을 통틀어 일컫는 말
1791년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일어난 혁명이다. 혁명의 결과로 식민지의 아프리카인 노예들이 해방되었으며, 아프리카인들이 지배하는 최초의 공화국인 아이티가 세워졌다.
스페인은 히스파니올라 섬의 생도맹그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1697년 이 섬의 서쪽을 프랑스에 내주게 된다.
생도맹그는 전 세계 설탕의 40%를 아이티 원주민과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생산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내용을 기초로한 인권선언은 생도맹그의 식민지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생도맹그 시민들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환영하였다. 흑인노예들과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열)들은 '자유, 평등, 우애'의 원칙을 생도맹그에도 적용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식민지 총독이 이를 거부하자 반발하는 물라토들을 잔인하게 진압하였다. 이는 아이티 혁명에 불을 지폈다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인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산토도밍고를 공격하여 그곳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1801년 생도맹그에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혁명군은 1803년 마지막 전투인 베르티에르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1804년 1월 1일 아이티 공화국을 세웠다.
이 전쟁으로 프랑스는 최대의 설탕 생산지를 잃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나폴레옹은 북아메리카 재식민화 계획을 포기하고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매각하게 되었다.
* 생도맹그(Saint-Domingue) : 1697년부터 1804년까지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1/3을 차지했던 프랑스의 식민지. 현재의 아이티
* 히스파니올라 섬(Hispaniola) : 카리브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서쪽 1/3은 아이티의 영토이고, 동쪽 2/3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이다, 히스파니올라는 '작은 스페인'을 뜻한다
*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 1743년~1803년) : 아이티의 혁명가, 독립 투사이다. 아이티의 독립의 아버지
* 물라토(mulatto) : 백인과 흑인의 혼혈
*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1801년에서 1805년까지 미합중국과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국가와 벌어진 전쟁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전쟁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세계 최강 미 해군이 처음 창설된 계기가 되었다. 트리폴리 전쟁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는 오스만 제국의 준독립 국가 상태에 있었다. 바르바리 국가는 트리폴리, 튀니스, 알제리 세 지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오스만 제국 본국에서 파샤가 임명되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지중해 일대에는 바르바리 국가들의 보호아래 바르바리 해적들이 난립하였으며 지중해를 통과하는 상선의 통행료를 명목삼아 상납금을 징수했을 뿐만 아니라 상선을 습격하여 포로들을 인질로 삼아 해당 국가와 협상을 벌여 몸값을 받아내고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 영국 해군 때문에 바르바리 해적들은 영국 국적의 상선은 건드리지 않았으나 독립 직후의 미국 상선을 집중 공격하였다. 미국은 신생 국가로 나라 재정이 열악한 형편이었기 때문에 1796년에 미국 정부는 바르바리 해적에게 매년 8만여 달러를 상납하는 조건의 트리폴리 조약을 맺으며 미국 국적의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조약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리 해적들은 미국 선박을 계속해서 공격했고 이에 격분한 미국은 해군 창설과 군비를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트리폴리이 파샤인 유수프 카라만르는 1801에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마자 상납요구를 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1801년 5월 10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801년 6월 1일 미 해군은 4척의 함선을 구성하여 지중해로 들어왔다. 이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해외 원정이기도 하다.
8월 1일 미 해군은 함포의 포격으로 바르바리 함선은 전투불능한 상태가 되었다. 미국의 호쾌한 승전이었다. 이후 1803년에는 전함 7척으로 구성된 미 해군 함대가 트리폴리를 봉쇄했고 1805년에는 리비아 북동부 지역을 공격했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군이 외국 땅에서 이룬 첫 승리였다. 이 전투에서 패한 트리폴리 파샤 유수프 카라만르는 300명에 이르는 미국 포로들을 석방하고 배상금 6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휴전 조약에 조인하면서 1차 바르바리 전쟁은 종결된다.
제1차 바르바리 전쟁은 미국 군대의 국제적인 평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입증했고 미해군과 해병대는 미국의 군사조직으로 위상을 확립하였다.
* 오스만 제국 :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렸던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터키 영토에 속하는 반도)를 중심으로 유럽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던 국가. 터키제국, 오스만튀르크라고도 불린다
* 바르바리(Barbary) : 유럽에서 베르베르인(북아프리카의 토착민)들이 살던 지역을 부르던 말. 특히 아프리카의 북아프리카의 중서부 해안국가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의 해안 지역을 말한다.
* 바르바리 해적(Barbary pirates, Barbary corsairs) :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등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들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동하던 해적
* 트리폴리(Tripoli) : 리비아의 수도
* 파샤 : 오스만 제국의 최고위층 귀족에게 주어진 호칭. 주로 장군이나 지방 총독에게 주어졌다. 영국의 경(lord)과 비슷하다
*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년~1826년) :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재임 : 1801년~1809년.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1803년)이 재임 기간중 일어난 큰 사건이다
* 튀니스(Tunis) : 튀니지의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