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Prussian War)
프랑스
독일
사건기간 : 1870년 7월 19일 ~ 1871년 5월 10일, 조회수 : 569, 등록일 : 2020-03-02
1868년 9월 스페인에서 혁명이 일어나 [1]이사벨 2세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폐위되었다. 1869년 스페인 혁명정부는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물색하였다. 후보를 탐색하다가 1870년 프로이센 왕국의 [2]빌헬름 1세 국왕의 사촌인 레오폴트에게 왕위를 제안하였다.
레오폴트는 처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작 프로이센 왕국의 [2]빌헬름 1세는 혁명후 내전상태인 스페인으로 가는 것에 반대했다. 또한 프랑스는 레오폴트가 스페인의 국왕이 되면 스페인과 독일에 둘러쌓이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대의 뜻을 강력히 전달하였다. 결국 1870년 7월 11일 레오폴트는 스페인 왕위 수락을 철회하였다.
프랑스 외교관이 스페인 왕위 포기의 재확인을 위하여 휴양중이던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요구한 사건을 [3]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전보로 전달했다. 전보를 받은 [3]비스마르크는 내용을 편집하여 언론에 흘렸다. 일명 [4]엠스전보사건으로 프로이센과 프랑스 양국은 서로 분노하였고 여론이 들끓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감정이 악화되자 프랑스의 [5]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 19일에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등 유럽 열강이 프랑스에 동조하지 않도록 외교정책에 주력했으며 그 결과로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고립상태가 되었다.
독일 남부 제후 국가들은 프로이센편으로 참전하면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뭉친 독일과 프랑스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까지 쌓은 프로이센군에게 연속적으로 패배하였고, 이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1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참전하여 진군했으나 [6]스당전투에서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의 패전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1870년 9월 4일 프랑스 제2제정은 붕괴되고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3세는 이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프로이센은 여세를 몰아 9월 15일 파리외곽에 당도하여 [9]알자스-로렌지역을 할양하는 조건으로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리 방어사령관인 [7]루이 쥘 트로쉬는 이를 거부하고 저항했으나 9월 18일 파리가 포위당했다.
1871년 1월 18일 프랑스의 [10]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2]빌헬름 1세는 초대황제로 즉위하고 독일제국의 탄생을 선포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수상이자 독일제국의 수상이 되었다.
포위된 파리는 비참한 겨울을 보내고 1871년 1월 28일 항복했고, 휴전협상이 시작되어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프랑스는 50억 프랑을 배상해야 했으며, 알자스-로렌지역을 넘겨주었다. 또한 배상금 완납전까지 프랑스 북부지역에 독일군이 주둔했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굴욕, 분노, 상실감과 복수심으로 반독 감정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적대적인 사이가 되었다. 독일은 통일이 완성되어 유럽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 이사벨 2세(Isabel II of Spain, 1830년~1904년) :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유일한 여왕. 여왕이 쫓겨난 후 스페인은 왕위계승의 내분을 겪다가 결국은 이사벨 2세의 왕세자인 알폰소 12세가 즉위하여 스페인은 보르봉 왕조를 계승한다.
[2] 빌헬름 1세(William I,1797년~1888년) : 프로이센의 국왕(1861년~1888년). 독일 제국의 황제(1871년~1888년)
[3]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년~1898년) : 프로이센 수상(1862~1890년). 통일독일제국 수상(1871년~1890년)
[4] 엠스전보사건(Ems Dispatch) :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와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사이에 있었던 일을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에게 알리는 내부 전보를 비스마르크가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언론에 배포한 사건
[5]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1808년~1873년) :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초대 대통령(재임,1848년 12월 20일~1852년 12월 2일)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재위,1852년 12월 2일~1870년 9월 4일)
[6] 스당(Sedan) : 프랑스 아르덴주에 위치한 코뮌(프랑스 공화국의 최하위 행정구역)중 하나
[7] 루이 쥘 트로쉬(Louis Jules Trochu, 1815년~1896년) : 프랑스의 군 장교이자 정치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중 국민방위정부 수반
[8]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 1797년~1877년) : 프랑스 제3공화국 임시정부 수반. 제2대 대통령(1871년 8월 31일~1873년 5월 24일)
[9]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 프랑스와 독일사이에 위치한 프랑스 행정 구역. 프랑스와 독일사이의 주요한 분쟁지역
[10]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 :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가량 떨어진 베르사유 시에 있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건설한 궁전.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레오폴트는 처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작 프로이센 왕국의 [2]빌헬름 1세는 혁명후 내전상태인 스페인으로 가는 것에 반대했다. 또한 프랑스는 레오폴트가 스페인의 국왕이 되면 스페인과 독일에 둘러쌓이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대의 뜻을 강력히 전달하였다. 결국 1870년 7월 11일 레오폴트는 스페인 왕위 수락을 철회하였다.
프랑스 외교관이 스페인 왕위 포기의 재확인을 위하여 휴양중이던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요구한 사건을 [3]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전보로 전달했다. 전보를 받은 [3]비스마르크는 내용을 편집하여 언론에 흘렸다. 일명 [4]엠스전보사건으로 프로이센과 프랑스 양국은 서로 분노하였고 여론이 들끓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감정이 악화되자 프랑스의 [5]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 19일에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등 유럽 열강이 프랑스에 동조하지 않도록 외교정책에 주력했으며 그 결과로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고립상태가 되었다.
독일 남부 제후 국가들은 프로이센편으로 참전하면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뭉친 독일과 프랑스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까지 쌓은 프로이센군에게 연속적으로 패배하였고, 이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1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참전하여 진군했으나 [6]스당전투에서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의 패전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1870년 9월 4일 프랑스 제2제정은 붕괴되고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3세는 이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프로이센은 여세를 몰아 9월 15일 파리외곽에 당도하여 [9]알자스-로렌지역을 할양하는 조건으로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리 방어사령관인 [7]루이 쥘 트로쉬는 이를 거부하고 저항했으나 9월 18일 파리가 포위당했다.
1871년 1월 18일 프랑스의 [10]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2]빌헬름 1세는 초대황제로 즉위하고 독일제국의 탄생을 선포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수상이자 독일제국의 수상이 되었다.
포위된 파리는 비참한 겨울을 보내고 1871년 1월 28일 항복했고, 휴전협상이 시작되어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프랑스는 50억 프랑을 배상해야 했으며, 알자스-로렌지역을 넘겨주었다. 또한 배상금 완납전까지 프랑스 북부지역에 독일군이 주둔했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굴욕, 분노, 상실감과 복수심으로 반독 감정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적대적인 사이가 되었다. 독일은 통일이 완성되어 유럽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 이사벨 2세(Isabel II of Spain, 1830년~1904년) :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유일한 여왕. 여왕이 쫓겨난 후 스페인은 왕위계승의 내분을 겪다가 결국은 이사벨 2세의 왕세자인 알폰소 12세가 즉위하여 스페인은 보르봉 왕조를 계승한다.
[2] 빌헬름 1세(William I,1797년~1888년) : 프로이센의 국왕(1861년~1888년). 독일 제국의 황제(1871년~1888년)
[3]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년~1898년) : 프로이센 수상(1862~1890년). 통일독일제국 수상(1871년~1890년)
[4] 엠스전보사건(Ems Dispatch) :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와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사이에 있었던 일을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에게 알리는 내부 전보를 비스마르크가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언론에 배포한 사건
[5]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1808년~1873년) :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초대 대통령(재임,1848년 12월 20일~1852년 12월 2일)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재위,1852년 12월 2일~1870년 9월 4일)
[6] 스당(Sedan) : 프랑스 아르덴주에 위치한 코뮌(프랑스 공화국의 최하위 행정구역)중 하나
[7] 루이 쥘 트로쉬(Louis Jules Trochu, 1815년~1896년) : 프랑스의 군 장교이자 정치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중 국민방위정부 수반
[8]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 1797년~1877년) : 프랑스 제3공화국 임시정부 수반. 제2대 대통령(1871년 8월 31일~1873년 5월 24일)
[9]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 프랑스와 독일사이에 위치한 프랑스 행정 구역. 프랑스와 독일사이의 주요한 분쟁지역
[10]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 :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가량 떨어진 베르사유 시에 있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건설한 궁전.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