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대학살(September Massacres)
프랑스
사건기간 : 1792년 9월 2일~1792년 9월 7일, 조회수 : 250, 등록일 : 2022-07-27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10]프로이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자 민중들은 패전의 원인이 국왕에게 있으며 왕비 [6]마리 아투아네트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2]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인 [11]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은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프랑스 국왕을 옹호하는 선언문으로 프랑스 민중은 분노에 휩싸이면서 혁명을 붕괴시키려는 왕당파와 반혁명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1792년 8월 9일, 프랑스 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는 의원들이 파리 시청을 점령하고 파리 시민들에게 봉기를 촉구하였디. 다음날 8월 10일 봉기가 시작되면서 수만의 파리 시민들은 루이 16세가 머물고 있는 튈르리 궁으로 쳐들어갔다. 루이 16세는 [1]튈르리 궁을 탈출해 의회에 피신하였다. 시민들은 의회로 몰려가 국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의회는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루이 16세를 시민들에게 넘겨준다. 왕권은 정지되고 [5]루이 16세와 [6]마리 앙투아네트는 유폐된다.
이런 가운데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은 [3]롱위를 점령하고 9월 2일 [4]베르됭을 함락시켰다. 이후 수도인 파리를 노리는 상황었다.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은 왕당파와 반력명 세력의 음모가 있을 거라는 소문도 더 커지게 된다.
흥분한 파리 시민들은 9월 2일부터 9월 7일까지 감옥을 습격해 왕당파와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중이던 죄수들을 즉결 재판의 형식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약 1,200여명의 수감자가 살해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동안 왕비인 [6]마리 앙투아네트의 측근이었던 랑발 공작부인이 살해되었는데 파리 시민들은 공작부인의 머리를 창끝에 얹어 왕비에게 보여주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충격을 받아 실신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7]파리코뮌이 있었다. [9]장폴 마라와 [8]조르주 당통을 비롯한 코뮌 정부의 각료들과 지도자들은 반혁명 세력의 숙청을 방조하면서 미리 작성해둔 명부를 통해 감옥에서의 즉결 처분에 일조하였다. 코뮌 지도자들은 프랑스 각처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반혁명세력들의 숙청을 권고하였고 이는 대학살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게 하였다.
9월 대학살은 프랑스 혁명의 과격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며 이후 국민공회 공포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1] 튈르리 궁(Palais des Tuileries) : 파리에 1871년까지 존재하던 궁전.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샹젤리제 사이에 있던 옛 왕궁
[2] 브라운슈바이크 공국(Duchy of Brunswick) : 13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브라운슈바이크였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독일 니더작센주에 속하고, 일부는 작센안할트주에 속한다
[3] 롱위(Longwy) : 프랑스 북동부 로렌에 위치한 뫼르트에모젤주의 도시
[4] 베르됭(Verdun) : 프랑스 북부 그랑테스트 레지옹의 뫼즈주에 있는 소도시
[5] 루이 16세(Louis XVI, 1754년 8월 23일~1793년 1월 21일) :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5대 국왕(재위, 1774년 5월 10일~1792년 9월 21일)
[6]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년 11월 2일~1793년 10월 16일) :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재위, 1774년 5월 10일~1791년 10월 1일)
[7] 파리 코뮌(Paris Commune,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8]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년~1794년) :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 로베스피에르, 장폴 마라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3거장'라고 불린다
[9] 장폴 마라(Jean-Paul Marat, 1743년~1793년) :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급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정치가. 자코뱅 클럽의 산악파에 참가하여 공포 정치를 추진했다
[10]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 : 독일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국으로 1701년에 성립해 1918년까지 존속했던 독일 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11]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Charles William Ferdinand, Duke of Brunswick, 1735년~1806년) :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작 겸 프로이센 육군 원수
[2]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인 [11]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은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프랑스 국왕을 옹호하는 선언문으로 프랑스 민중은 분노에 휩싸이면서 혁명을 붕괴시키려는 왕당파와 반혁명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1792년 8월 9일, 프랑스 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는 의원들이 파리 시청을 점령하고 파리 시민들에게 봉기를 촉구하였디. 다음날 8월 10일 봉기가 시작되면서 수만의 파리 시민들은 루이 16세가 머물고 있는 튈르리 궁으로 쳐들어갔다. 루이 16세는 [1]튈르리 궁을 탈출해 의회에 피신하였다. 시민들은 의회로 몰려가 국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의회는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루이 16세를 시민들에게 넘겨준다. 왕권은 정지되고 [5]루이 16세와 [6]마리 앙투아네트는 유폐된다.
이런 가운데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은 [3]롱위를 점령하고 9월 2일 [4]베르됭을 함락시켰다. 이후 수도인 파리를 노리는 상황었다.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은 왕당파와 반력명 세력의 음모가 있을 거라는 소문도 더 커지게 된다.
흥분한 파리 시민들은 9월 2일부터 9월 7일까지 감옥을 습격해 왕당파와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중이던 죄수들을 즉결 재판의 형식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약 1,200여명의 수감자가 살해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동안 왕비인 [6]마리 앙투아네트의 측근이었던 랑발 공작부인이 살해되었는데 파리 시민들은 공작부인의 머리를 창끝에 얹어 왕비에게 보여주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충격을 받아 실신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7]파리코뮌이 있었다. [9]장폴 마라와 [8]조르주 당통을 비롯한 코뮌 정부의 각료들과 지도자들은 반혁명 세력의 숙청을 방조하면서 미리 작성해둔 명부를 통해 감옥에서의 즉결 처분에 일조하였다. 코뮌 지도자들은 프랑스 각처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반혁명세력들의 숙청을 권고하였고 이는 대학살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게 하였다.
9월 대학살은 프랑스 혁명의 과격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며 이후 국민공회 공포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1] 튈르리 궁(Palais des Tuileries) : 파리에 1871년까지 존재하던 궁전.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샹젤리제 사이에 있던 옛 왕궁
[2] 브라운슈바이크 공국(Duchy of Brunswick) : 13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브라운슈바이크였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독일 니더작센주에 속하고, 일부는 작센안할트주에 속한다
[3] 롱위(Longwy) : 프랑스 북동부 로렌에 위치한 뫼르트에모젤주의 도시
[4] 베르됭(Verdun) : 프랑스 북부 그랑테스트 레지옹의 뫼즈주에 있는 소도시
[5] 루이 16세(Louis XVI, 1754년 8월 23일~1793년 1월 21일) :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5대 국왕(재위, 1774년 5월 10일~1792년 9월 21일)
[6]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년 11월 2일~1793년 10월 16일) :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재위, 1774년 5월 10일~1791년 10월 1일)
[7] 파리 코뮌(Paris Commune,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8]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년~1794년) :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 로베스피에르, 장폴 마라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3거장'라고 불린다
[9] 장폴 마라(Jean-Paul Marat, 1743년~1793년) :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급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정치가. 자코뱅 클럽의 산악파에 참가하여 공포 정치를 추진했다
[10]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 : 독일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국으로 1701년에 성립해 1918년까지 존속했던 독일 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11]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Charles William Ferdinand, Duke of Brunswick, 1735년~1806년) :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작 겸 프로이센 육군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