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전투(處仁城 戰鬪)

몽골 대한민국 사건기간 : 1232년 12월 16일, 조회수 : 364,   등록일 : 2021-12-27
1232년(고종 20년) 몽골의 제2차 침입 당시 고려의 [1] 백현원의 승장 [2] 김윤후가 몽골군의 장수 [3] 살리타이를 [4] 처인성에서 사살한 전투이며, 몽골군을 퇴각하게 만들었다.

고려는 제1차 몽고침략 당시 강화를 했지만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여 고려의 [7] 고종은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이후 항전 태세에 돌입하자 분노한 몽골은 살리타이를 앞세워 침입했다. 몽골군은 배신자인 [5] 홍복원의 도움으로 [6] 서경을 함락시킨 후 개경에 도달하였다. 몽골군은 방화와 약탈을 일삼으며 남진을 하며 공격했다.

당시 처인성은 작은 토성이었으며 성안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은 정규병력 100여 명, 승려 100여 명, 그리고 다수의 부곡민뿐이었다.
처인성에 도착한 살리타이는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치열하게 처인성 전투가 전개되었다. 처인성에 있던 승장 김윤휴는 활을 쏘아 사리타이가 사망하였다.

장수를 잃은 몽골군의 은 전의를 상실하여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이때 [8] 부인사 소장의 [9] '고려대장경' 초조판(初彫板)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몽골군에 의해 불타 없어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처인성전투의 승리로 몽골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남쪽지방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게 되었다.

처인성은 고려사회에서 천대받았던 부곡의 작은 토성이었으나 피난민들까지 합세하여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신분을 추월하여 나라를 지키려 했던 강인한 호국의지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 백현원 : 현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해 있는 사찰
[2] 김윤후(미상~미상) : 고려후기 동북면병마사, 추밀원부사, 수상공 우복야 등을 역임한 승병장
[3] 살리타이(미상~1232년) : 몽골 제국의 장수. 살리타는 '눈이 쌓인 산봉우리'라는 뜻이다
[4] 처인성 : 현 경기도 용인시
[5] 홍복원(1206년~1258년) : 고려의 무신이자 역신이며 원나라의 무신
[6] 서경(西京) : 현재의 평양. 서경은 고려삼경중 하나로서 고려시대에 불리던 지명이었다
[7] 고종(1192년~1259년) : 고려의 제23대 국왕(재위:1213년~1259년)
[8] 부인사 : 고려 시대에 부인사는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대규모 사찰
[9] 초조대장경 : 제1차 간행한 대장경. 거란의 침입을 받아 곤경에 처했을 때 불심으로 물리치기 위하여 간행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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