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고려-거란 전쟁
몽골
대한민국
중국
사건기간 : 1018년 12월~1019년 3월, 조회수 : 314, 등록일 : 2021-12-15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이 철수하여 1011년 1월에 개경에 돌아온 현종은 강화조건인 요나라에 친조하지 않았고, 강동 6주를 반환해 달라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1013년 거란과 국교를 끊고 다음 해에 송나라와 다시 교류하였으므로 요는 1018년 12월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으로 다시 고려를 침공하였다.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대군으로 이에 대비하였다.
강감찬 등은 흥화진에서 고려는 1만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가 적병이 이르자 막았던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거란군은 초반부터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후퇴하지 않고, 고려군의 이어진 공격을 피하여 개경으로 나아가다가 자주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으며, 고려군의 청야 전술로 인해 식량 공급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소배압은 다음 해 정월 개경에서 멀지 않은 신은현에 도달했으나 개경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이처럼 자주와 신은현에서 고려군의 협공으로 퇴각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적을 섬멸했는데 이 전투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거란군 10만 명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2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려군은 거란의 2차 침입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전쟁에 대비하였고 수적으로도 적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후 고려는 개경 주위에 외성을 쌓아 수도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한편 국경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요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북방 민족들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였고 동시에 당대 동아시아 최강 전력이었던 거란군을 당당히 격파함으로서 번영의 기틀을 맞이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고려는 이후 120여년 간 이어지는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 강동 6주 : 흥화진(평북 의주시), 용주(평북 용천군), 통주(평북 선천군), 철주(평북 철산군), 귀주(평북 구성시), 곽주(평북 곽산산)의 여섯 지역
* 현종(992년~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재위:1009년~1031년)
* 소배압(미상~미상) : 거란족의 요나라 장군. 제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의 소손녕은 소배압의 동생이다
* 흥화진 : 고려의 최북단(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995년(고려 성종 14) 구축하였다
* 자주 : 현재 평안남도 순천시
* 신은현 : 현재 황해북도 신계군
* 귀주 : 현재 평안북도 구성시
* 강감찬(948년~1031년) : 고려의 문신. 서희, 최영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위인
* 강민첨(963년~1021년) : 고려의 무신
* 상원수 : 외적 침략과 같은 유사시에 5군 또는 3군이 편성되면 군사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 역할을 하였다
* 청야전술 :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로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서 적군의 보급 한계로 지치게 만드는 전술
1013년 거란과 국교를 끊고 다음 해에 송나라와 다시 교류하였으므로 요는 1018년 12월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으로 다시 고려를 침공하였다.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대군으로 이에 대비하였다.
강감찬 등은 흥화진에서 고려는 1만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가 적병이 이르자 막았던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거란군은 초반부터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후퇴하지 않고, 고려군의 이어진 공격을 피하여 개경으로 나아가다가 자주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으며, 고려군의 청야 전술로 인해 식량 공급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소배압은 다음 해 정월 개경에서 멀지 않은 신은현에 도달했으나 개경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이처럼 자주와 신은현에서 고려군의 협공으로 퇴각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적을 섬멸했는데 이 전투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거란군 10만 명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2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려군은 거란의 2차 침입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전쟁에 대비하였고 수적으로도 적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후 고려는 개경 주위에 외성을 쌓아 수도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한편 국경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요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북방 민족들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였고 동시에 당대 동아시아 최강 전력이었던 거란군을 당당히 격파함으로서 번영의 기틀을 맞이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고려는 이후 120여년 간 이어지는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 강동 6주 : 흥화진(평북 의주시), 용주(평북 용천군), 통주(평북 선천군), 철주(평북 철산군), 귀주(평북 구성시), 곽주(평북 곽산산)의 여섯 지역
* 현종(992년~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재위:1009년~1031년)
* 소배압(미상~미상) : 거란족의 요나라 장군. 제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의 소손녕은 소배압의 동생이다
* 흥화진 : 고려의 최북단(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995년(고려 성종 14) 구축하였다
* 자주 : 현재 평안남도 순천시
* 신은현 : 현재 황해북도 신계군
* 귀주 : 현재 평안북도 구성시
* 강감찬(948년~1031년) : 고려의 문신. 서희, 최영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위인
* 강민첨(963년~1021년) : 고려의 무신
* 상원수 : 외적 침략과 같은 유사시에 5군 또는 3군이 편성되면 군사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 역할을 하였다
* 청야전술 :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로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서 적군의 보급 한계로 지치게 만드는 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