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진 전투

몽골 대한민국 중국 사건기간 : 1010년 11월 17일~1010년 11월 23일, 조회수 : 871,   등록일 : 2021-12-05
1010년(현종 1) 거란 제2차 침입 당시 요(거란)의 성종(야율융서)이 40만 대군으로 직접 고려에 침입하였다. 같은 해 11월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의 최북단 요충지인 흥화진을 포위하고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면서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흥화진의 고려군은 3,000명이었다. 흥화진의 도순검사 양규는 '우리는 몸과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영원히 위대한 고려를 받들 것이다(고려사)'라고 하면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였다.

고려는 전통적으로 활이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성 위에서 지향 사격을 할 경우 일반적인 사거리보다 훨씬 먼 거리를 공격할 수 있으며 훨씬 더 탁격력을 깊게 미칠 수 있다. 고려군은 활줄을 당기는 데 소8마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활인 팔우노와 정노라는 석궁와 마름쇠등으로 물 밀듯이 밀려오는 거란의 공격에 대항하였다.

거란군은 공성전략으로 큰 원목으로 성문을 부수기 위하여 첨두목려라는 무기를 앞세워 성문입구까지 공격해 왔으나 고려는 맹화유를 들이붓고 불을 질러 무력화시켰다. 결국 거란군은 흥화진을 우회하여 통주방면으로 진격하여 남하하였다.

흥화진 전투는 양규 지휘하의 고려군 3천명의 결사항전으로 거란군 40만명의 남하 병력을 분산시키고 그들의 후방을 교란하게 되어 고려군이 반격의 여건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현종(992년~1031년) : 고려의 제8대 국왕(재위:1009년~1031년)
* 요나라 성종(972년~1031년) : 요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982년~1031년). 이름은 야율융서
* 흥화진 : 고려의 최북단(평안북도 의주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995년(고려 성종 14) 구축하였다. 양규가 지키고 있었다(3000명). 거란은 40만명
* 순검군 : 순찰과 치안유지가 주된 임무였던 고려시대 군편제
* 양규(미상~1011년) :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때 크게 활약하였다
* 팔우노 : 노는 여러 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쏠 수 있는 활이며 팔오노는 활줄을 당기는 데 소 8마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활
* 정노 : 고려시대 석궁의 일종
* 마름쇠 : 사람과 말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면에 설치하는 방어용 무기
* 첨두목려 : 성문을 공격하는 공성 무기
* 맹화유 : 맹렬히 타는 기름
* 통주 : 평안북도 선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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