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성 전투

대한민국 일본 사건기간 : 1592년 5월 25일, 조회수 : 478,   등록일 : 2021-11-09
일본 고니시 유키나가군은 정발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하루만에 동래성에 도달했다.
부산진 전투에 이어 일어난 임진왜란 두 번째 전투로 동래 부사 송상현이 2시간을 버티며 일본군을 끝까지 막아냈으나 결국 전사하고 동래성은 함락되었다.
임진왜란의 서막을 알리는 전투였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래성에 도착하자 전투를 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서 송상현에게 보여주었다. 
"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달라."
이에 송상현은 
" 戰死易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라는 답을 했다. 이후 일본은 공격을 시작했다.

동래성의 조선군과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압도적인 일본군의 군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성이 뚫리고 동래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송상현은 조복으로 갈아입고 고향의 부모에게 보내는 시 한 수를 쓴 뒤 일본군의 칼에 맞아 전사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송상현이 비록 적장이긴 하나 그의 용기와 충절에 감탄했고, 전투가 끝난 후 정중한 예를 갖추어 송상현의 장례를 치러주었고 추모비를 세웠으며, 부하들에게 그의 충직함을 본받으라고 훈시했다.

전투 당시 동래성의 병사들과 백성들은 거의 모두 학살당했다. 전투 중에도 일본군의 무차별 살육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며, 전투가 끝난 후에도 동래성의 백성들은 성밖으로 끌려나와 일본군한테 참혹하게 처형된 뒤 해자에 파묻혔다.
이는 2005년 5월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부지에서 동래성 외곽 해자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면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약 80여 구의 유골이 함께 발견되어 당시의 참상을 전해 주기도 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 송상현(1551년~1592년) : 조선 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때의 장수. 부산 동래성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서 성을 지키며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 정발(1553년~1592년) : 조선 중기의 무신. 부산진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부사 : 조선시대 지방의 장관직.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은 부, 목, 군, 현의 체제였다
* 고니시 유키나가 :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최초로 상륙한 일본군의 선봉장중의 한명
* 해자 : 적의 접근,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의 둘레에 땅을 파 놓고 물을 채워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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