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의 난(萬積─亂)

대한민국 사건기간 : 1198년 5월, 조회수 : 132,   등록일 : 2021-06-11
  고려사회는 엄격한 신분질서가 강조되는 가운데, 특히 노비의 경우는 그 사회적 처지가 가장 열악하였다.
  무신정변은 문무의 지위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신분 질서에 많은 변동을 가져왔다. 또한 무신집권기에 천민 출신의 인물이 관직에 오르고 출세하는 사례가 있었으므로 신분에 대한 전통적인 권위의식이 무너져갔다. 그리고 당시 농민들의 봉기 또한 빈발함으로써 천민들이 이에 합세하거나 독자적으로 향·소·부곡민이나 천민들이 신분해방을 위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1198년 5월에 고려 무신 집권기에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중심이 되어 개경 북산(北山)에서 나무를 하다가 공·사노예들을 불러모아 "무신란 이후에 고관이 천한 노예에서 많이 나왔으니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종자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선동하면서 반란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흥국사에서 모여서 궁중으로 몰려가 난을 일으키고, 환관과 궁노들의 호응을 받아 먼저 최충헌을 죽인 다음 각기 자기 주인들을 죽이고 노비가 기록되어 있는 문서를 불사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날에 수백 명 밖에 모이지 않자 이 정도 병력으로는 거사를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4일 후에 다시 보제사에 모여 거사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당시 자리에 있었던 율학박사 한충유의 종인 순정이 주인에게 밀고함으로써 반란계획이 누설되어 실패로 끝났고, 만적 등 1백여 명은 죽임을 당하였다.

  이 반란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무신집권기에 신분해방을 목표로 일어난 천민반란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적의 난)
 - 위키백과(만적의 난)

* 신종(神宗, 1144년~1204년) : 고려의 제20대 국왕, 재위 : 1197년~1204년
* 향·소·부곡 :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있었던 하급 주민들의 지역. 향·소·부곡 사람들의 신분은 양민이지만 그 신분이 노비·천민에 유사한 특수한 열등계급
* 흥국사 : 고려시대 개경에 있던 사찰로서 고려 태조 7년(924) 창건되었다
* 보제사 : 고려시대 개경에 있던 사찰
* 율학박사 : 고려시대 율령(律令) 사무를 담당한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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