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
남수단
영국
프랑스
사건기간 : 1898년 7월 10일~1898년 11월 3일, 조회수 : 288, 등록일 : 2021-05-15
19세기말 서구열강은 산업화에 필요한 금, 은, 고무등의 자원을 위해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출하여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1]종단정책과 프랑스의 [2]횡단정책이 아프리가 수단의 남부 [3]파쇼다(Fashoda)에서 충돌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내부적으로 정치적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외부적으로 독일과 크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 것은 무익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프랑스가 물러섬으로써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긴장관계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1904년에 영불협정으로 가까워졌다.
파쇼다 사건은 동맹간 대립구조(영국-프랑스-러시아 vs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로 확대되어 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1] 종단정책 :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아프리카의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정책
[2] 횡단정책 : 서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 섬을 연결하는 정책
[3] 파쇼다(Fashoda) : 현재 남수단의 코도크(Kodok)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1]종단정책과 프랑스의 [2]횡단정책이 아프리가 수단의 남부 [3]파쇼다(Fashoda)에서 충돌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내부적으로 정치적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외부적으로 독일과 크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는 것은 무익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프랑스가 물러섬으로써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긴장관계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1904년에 영불협정으로 가까워졌다.
파쇼다 사건은 동맹간 대립구조(영국-프랑스-러시아 vs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로 확대되어 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1] 종단정책 :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아프리카의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정책
[2] 횡단정책 : 서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 섬을 연결하는 정책
[3] 파쇼다(Fashoda) : 현재 남수단의 코도크(Kod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