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미국사건기간 : 1964년 8월 2일, 조회수 : 217, 등록일 : 2021-05-04
1964년 8월2일 통킹만 해상에서 북베트남군 어뢰정 3척이 미국 구축함 매독스를 공격하여 양국간 교전이 벌어졌다.
미 해군은 이틀 뒤인 4일 공해에서 북베트남의 2차 공격이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미국 의회는 '통킹만 결의'를 의결하여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무려 2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베트남 전쟁 미국 개입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8월 4일 두 번째 교전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했지만,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북베트남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폭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 통킹만((Gulf of Tonkin) : 베트남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있는 만. 통킹이라는 이름은 하노이의 옛 이름인 '동낀'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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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은 [1]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연장선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Second Indochina war)이라고도 한다. 베트남은 항미전쟁이라고 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남전으로 부른다.
이 전쟁은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의 내전으로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 전쟁 양상을 띠었다.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
미국은 [2]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1964년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남베트남을 수호하려던 미국은 결국 북베트남의 20여년동안 끈질긴 공세와 저항에 지치게 되고 미국내의 반전여론에 밀려 1973년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미군이 철수한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공세에 패배하였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 호찌민까지 함락되면서 기나긴 전쟁은 종결된다. 그리하여 1976년 베트남은 통일을 선언하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The first Indochina War, 1946년 12월 19일 ~ 1954년 8월 1일) : 프랑스-베트남 전쟁. 베트남 독립전쟁 [2]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 : 1964년 8월 2일 통킹만 해상에서 북베트남 해군의 135편대 소속 어뢰정 3척이 미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함을 공격한 사건
6·3항쟁은 한일회담 반대운동, 한일협상 반대운동, 6·3시위라고도 한다. 이 항쟁은 서울에서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최초로 벌어진 1964년 3월 24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6월 3일에 절정을 이루었다.
박정희 정부는 6월 3일 오후 8시에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선포하고 경찰과 계엄군이 투입되어 7월 28일 시위는 진압되었고 다음날인 29일 계엄령은 해제되었다.
이러한 반발 속에서도 한일간 협의는 계속되었고 1965년 2월 15일 한⋅일 양국은 한⋅일 기본 조약에 합의하였고 1965년 6월 22일 정식 조인되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이후, 베트남은 북위 17도를 경계로 일단 양분되었고, 17도 이북에는 [4]호치민이 이끄는 공산국가인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수립되고, 17도 이남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5]응오 딘 지엠 정권의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수립되었다.
미국은 세계적 냉전이 심화되던 시대에 '공산주의 봉쇄'라는 전략과 기치를 내걸고 인도차이나 분쟁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1964년 8월 2일에 발생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을 본격화했다. 미국 [1]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1964년 8월 5일 북베트남 폭격을 지시했으며, 이것이 일명 피어스 애로우(Pierce Arrow)작전의 시작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전면전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은 풍부한 군대와 첨단 무기를 가지고도 [3]베트콩의 예측이 불가능한 게릴라 전술, 불규칙한 전투행동, 베트남의 자연환경등으로 고전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국내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해지면서 1968년부터 미국과 북베트남사이의 휴전협상을 시작하였다
1969년 6월, [2]리차드 닉슨은 베트남으로부터의 단계적인 미군 철수를 발표했고, 1973년 1월 27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미국이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하였다. 북베트남과 미군 사이의 포로 교환도 이루어졌으며 그해 3월 마지막 남은 미국의 전투부대가 남베트남에서 철수하였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패권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베트남에 개입하는 길을 선택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패퇴하였고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미국으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년간 5만 명의 인명피해와 1,200억 달러가 소요된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패배한 전쟁으로써 역사에 남게 되었다.
[1]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 1908년~1973년) : 미국 제36대 대통령(임기,1963년 11월 22일~1969년 1월 20일) [2]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년~1994년) :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임기, 1969년 1월 20일~1974년 8월 9일) [3] 베트콩(Viet Cong) :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게릴라 조직으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지칭하는 용어 [4] 호찌민(Ho Chi Minh, 1890년~1969년) : 초대 베트남 민주 공화국 주석(임기, 1951년 2월 19일 - 1969년 9월 2일). 현대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불린다. [5] 응오 딘 지엠(NNgo Dinh Diem, 1901년~1963년) : 남베트남의 제1대 총통(임기, 1955년 10월 26일~1963년 11월 2일)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또는 월남전 참전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6년 4월까지 4차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전투부대를 파병하였다.
한국의 파병 제안과 월남(당시 남베트남)정부 및 미국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이다.
1차 파병
- 1964년 9월 11일 해군 LST편으로 부산항을 출발하여 9월 22일 베트남의 수도 [1] 사이공에 상륙하였다.
- 130명 규모의 이동외과병원 요원과 10명을 편성된 태권도교관단 요원 등 140명을 파병하였다.
2차 파병
- 1965년 3월 10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3월 16일 당시 베트남의 수도 [1] 이공에 도착하였으며, 사이공 동북방 22㎞ 지점의 디안에 주둔하여 건설 지원 및 자체 방어를 위한 경비대대, 수송, 공병임무 수행하였다.
- 강원도 현리에 있는 국군 제6사단 사령부에서 '한국군사원조단' 본부를 창설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부대'로 명명하여 파병하였다.
3차 파병
- 1965년 10월 9일 제2해병여단(청룡부대)은 남베트남 [2] 캄란에 상륙하였고 11월 1일 수도사단(맹호부대)가 [3] 퀴논에 상륙을 하였다
4차 파병
- 1966년 4월 19일 수도기계화사단(맹호부대) 제26연대가 꾸이년에 상륙을 하고, 이어서 10월 8일 제9사단(백마부대)가 [4] 닌호아에 상륙하였다
196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에서는 언론매체의 영향으로 반전 여론이 고조되어 1969년 1월 닉슥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철군을 발표하고 1969년 7월부터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도 제1단계로 1971년 12월 4일 제2해병 여단의 철수를 시작으로 1972년 4월 1일까지 9천명의 병력을 철수 시켰다.
제2단계 철수는 1973년 1월 8일, 파리에서 체결된 휴전 협정의 규정 사항인 "모든 외국 군대는 휴전 후 60일 이내에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한다."는 조항에 따라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군은 1973년 1월 30일 125명의 선발대가 항공편으로 철수하였으며, 3월 14일까지 본대가 철수하고, 3월 23일 후발대 118명이 항공편으로 철수함으로써, 남베트남에 주둔하였던 모든 부대가 철수를 완료하였다.
한국군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여 경제 발전에 필요한 외화수입이라는 많은 경제적 이익과 한국전쟁 이후의 값진 실전 경험을 얻었으나 파병자 중 5,000명의 사망자와 2만여 명의 참전용사가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1] 사이공(Saigon) : 베트남 최대도시로 경제 중심지. 남베트남(1954년~1976년) 수도였으며 1975년에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2] 캄란(Cam Ranh) : 베트남의 남동부에 있는 항구도시
[3] 퀴논(Quy Nhon) :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반도모양) 베트남 중부의 해안도시. 다낭과 나트랑의 중간지점에 위치. 베트남전쟁 당시 맹호부대의 주둔지
[4] 닌호아(Ninh Hòa) : 베트남의 해안마을. 베트남 전쟁당시 백마부대 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