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예송(己亥禮訟)
대한민국
사건기간 : 1659년 5월~1660년, 조회수 : 230, 등록일 : 2021-03-29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서거하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예송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서인(송시열, 송준길, 김수항등)들은 효종이 인조의 차자(인조의 장자는 소현세자)의 예에 따라 기년복(1년)을 주장하였고, 남인(윤선도, 허목, 휸휴등)들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하여 인조의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3년)을 주장하였다.
당시 영의정 정태화는 '경국대전'을 근거로 장자와 차자를 구분하지 않는 기년복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현종은 몇 번의 수의(收議)를 거쳐 기년복으로 확정하였다. 그러자 남인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격분하여 윤선도를 유배시키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되어 이 시기에 서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예송은 단순히 상복을 두고 벌인 논쟁은 아니었으며,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효종의 정통성, 왕권과 신권의 관계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중대한 정치 현안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기해예송), 국산편찬위원회(예송)
* 예송 : 예절에 관한 논란
* 자의대비(장렬왕후, 1624년~1688년) :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계비(새 중전)
* 효종(1619년~1659년) : 조선 제17대 국왕, 재위 : 1649년~1659년.
* 현종(1641년~1674년) : 조선 제18대 국왕, 재위 : 1659년~1674년
* 서인 : 신권중심
* 남인 : 왕권중심
* 경국대전 :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
서인(송시열, 송준길, 김수항등)들은 효종이 인조의 차자(인조의 장자는 소현세자)의 예에 따라 기년복(1년)을 주장하였고, 남인(윤선도, 허목, 휸휴등)들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하여 인조의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3년)을 주장하였다.
당시 영의정 정태화는 '경국대전'을 근거로 장자와 차자를 구분하지 않는 기년복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현종은 몇 번의 수의(收議)를 거쳐 기년복으로 확정하였다. 그러자 남인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격분하여 윤선도를 유배시키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되어 이 시기에 서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예송은 단순히 상복을 두고 벌인 논쟁은 아니었으며,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효종의 정통성, 왕권과 신권의 관계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중대한 정치 현안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기해예송), 국산편찬위원회(예송)
* 예송 : 예절에 관한 논란
* 자의대비(장렬왕후, 1624년~1688년) :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계비(새 중전)
* 효종(1619년~1659년) : 조선 제17대 국왕, 재위 : 1649년~1659년.
* 현종(1641년~1674년) : 조선 제18대 국왕, 재위 : 1659년~1674년
* 서인 : 신권중심
* 남인 : 왕권중심
* 경국대전 :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