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대한민국사건기간 : 1884년 7월 7일, 조회수 : 289, 등록일 : 2021-03-05
러시아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부동항 획득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계속 남하하여 조선과 통상체결을 원했다.
러시아는 조선과 수교를 위해 청나라에 접근하지만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청나라는 이를 거절하자 청나라의 러시아공사인 베베르를 통하여 조선의 묄레도르프에게 접근하여 교섭하였다. 이에 조선은 러시아 베베르와 외무장관 김병시는 1884년 7월 7일에 한로 조약의 비준을 교환하여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이후 베베르는 조선의 러시아공사로 부임하게 된다.
* 묄렌도르프(Möllendorff, 1848년~1901년) : 독일(프로이센왕국)출신의 외교관 겸 언어학자로 조선에서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최초의 서양인.한국이름 목인덕
* 베베르(Weber, 1841년~1910년) : 러시아 제국의 외교관으로 1882년에 청나라의 러시아공사로 부임하였으며 1885년부터 1897년까지 주(駐)조선 러시아 공사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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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에서 1890년 사이에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던 미국 백인 정착민과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사이의 정복 전쟁을 통틀어 일컫는 말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거의 한 세기 동안 벌인 갈등과 경쟁을 벌어졌다. 이를 그레이트 게임이라 한다.
인도를 차지함으로서 제국주의 경쟁의 선봉에 선 영국과 아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꾀한 러시아 두 제국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의 러시아와 페르시아간 [1]굴리스탄 조약 조약부터 시작하여 1907년의 [2]영러 협상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의 거문도 사건이나 영일동맹, 러일전쟁, 한일합방 역시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 굴리스탄 조약(Gulistan) : 1813년 이란의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페르시아)와 러시아가 전쟁후 아제르바이잔의 굴리스탄에서 체결한 조약.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이란의 카프카스 지역(조지아ㆍ아제르바이잔ㆍ다게스탄등)을 할양받았다
[2] 영러 협상 : 1907년 영국과 러시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에서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위구르, 티베트와 같은 중부 아시아에서의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한 협상이다
청나라는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무기력하게 패하고 태평천국운동을 겪은 뒤 국제사회의 변화에 눈을 뜨면서 서구 열강에 대응하기 위하여 황폐한 산업과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 나아가서는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군수 공장과 조선소(북양함대, 남양함대, 복건함대를 창설), 제철소, 방직 공장등을 만들었다. 근대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한 유학생을 외국에 파견하고, 서양의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근대적인 학교도 세웠다. 이렇게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수용하는 데 힘썼다고 하여 [1]양무운동이라고 한다.
양무운동은 태평천국운동, 신유정변을 거치면서 한족인 [2]증국번, [3]이홍장 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 세력들이 주도하였다.
이시기의 권력 중심은 [4]서태후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5]공친왕이 양무정책 추진의 중심인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무운동은 반대세력에 의해 비판과 견제를 받아왔다. 관리의 기업통제에서 야기되는 부패와 비능률, 전통적인 경제구조의 잔존, 운동 추진 주체가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점등으로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이는 곧 청불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게된다.
[1] 양무(洋務) : 청나라와 서양 여러나라와의 관계, 교류 등을 일컫는 말
[2] 증국번(장꿔판, 1811년~1872년) : 청나라 말기의 군인이자 정치가,학자로서 약체화된 청나라 조정의 군대를 대신해 상군을 조직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했고, 양무운동에도 큰역할을 하였으며 이홍장, 좌종당 등 청나라 말기의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3] 이홍장(리훙장, 1823년~1901년) : 청나라 말기의 한족계 출신으로 중국번의 막료로 관리생활을 시작하여 북양대신의 자리에 오르면서 청나라 대외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되었다.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였으며 청나라 부국강병을 위한 양무운동등을 주도하였다.
[4] 서태후(자희황태후,1836년~1908년) : 제9대 황제인 함풍제의 후궁이자 제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제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 6세의 어린아들(동치제)이 황제에 오르면서 섭정정치로 집권을 하게된다. 이후 청나라 말기는 서태후의 시대라고 평하기도 한다.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태후라 불린다
[5] 공친왕(1833년~1898년) : 함풍제(청나라 제9대 황제)의 이복 동생.혁흔.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6남이며 신유정변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게된다.
이 전쟁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놓고 프랑스와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며 청불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의 하나로서 베트남 [3]응우옌 왕조의 카톨릭 탄압은 프랑스에게 베트남 침공 명분을 만들었다.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는 베트남 공략을 적극화하여 1874년 '제2차 사이공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 내용은 청나라의 베트남에 대한 종주국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청나라는 거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베트남에 들어와 있던 [1]흑기군은 프랑스 군대를 공격했으며 프랑스는 1883년에 이 세력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하노이를 점령했다.
1884년 8월 프랑스는 베트남으로부터 북상하여 타이완(대만)을 공격하고 청나라 [2]복건성의 함대를 대파했다. 청나라는 프랑스의 도발행위에 대항하여 선전포고를 했다. 해전은 프랑스의 압도적인 승리였고 육전에서는 청나라가 분전했지만 유리하지 못하였다.
전세가 청나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실권을 쥐고 있던 [4]서태후는 1885년 6월 22일 톈진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종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보호권을 인정함으로써 청나라의 종주권은 상실되었다. 그리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로 인해 수천년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는 시초가 된다.
[1] 흑기군 : 유영복이 거느린 사병조직. 중국의 윈난성(운남성)과 베트남 사이의 국경지대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2] 푸젠성(복건성) : 중국 남동부의 성. 대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중국의 성
* 청나라 말기의 해군 : 북양함대, 남양함대, 복건함대, 광동함대
[3]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 :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
[4] 서태후(자희황태후,1836년~1908년) : 함풍제의 후궁이자 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 6세의 어린아들(동치제)이 황제에 오르면서 섭정정치로 집권을 하게된다. 이후 청나라 말기는 서태후의 시대라고 평하기도 한다.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태후라 불린다
1876년 벨기에 국왕 [1]레오폴 2세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 [2]헨리 모턴 스탠리에게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며 콩고 탐험을 의뢰했다. 헨리 스탠리의 탐험 결과 벨기에가 콩고 지역에 진출하게 되자, 아프리카 전역에 산재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럽 주요 국가들은 너나할것 없이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발벗고 나섰다.
당시 영국은 이집트 카이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및 인도 캘커타를 잇는 이른바 3C정책과 아프리카 종단정책을 추구했다. 프랑스는 모로코, 알제리를 거점으로 해서 동쪽으로 점령해 나가는 아프리카 횡단정책을 추구했다. 독일은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잇는 3B정책으로 중부유럽과 발칸 지역을 넘어서서 서아시아와 아프리카로까지 세력범위를 확장시키려 했다. 여기에 벨기에, 포르투갈도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나섰다.
이리하여 중동에서는 독일의 3B정책과 영국의 3C정책이 대립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부딪쳤다. 또 모로코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부딪쳤다. 유럽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벨기에의 [1]레오폴드 2세와 독일의 [3]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를 주도하여 콩고분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분할 문제를 두고 유럽 각국은 협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콩고는 자유무역국(중립국)으로 선포하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개인자격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벨기에는 콩고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할 수 있었다.
유럽열강들의 식민지화로 1914년 무렵에는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모든 지역이 유럽의 식민지로 분할되었다.
이렇게 유럽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원주민들의 문화적, 언어적 경계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일직선에 가까운 국경선은 130년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 레오폴 2세(Leopold II of Belgium, 1835년~1909년) : 벨기에왕국의 2대 국왕(재외 1865년~1909년). 아프리카 콩고 식민지를 사유지처럼 사용하면서 수천만 명의 주민을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고 집단살해하였다
[2]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1841년~1904년) : 영국의 탐험가이자 언론인. 아프리카 탐험과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구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1877년부터 1884년까지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후원을 얻어 콩고 지방을 탐험하였다
[3]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년~1898년) : 프로이센 수상(재임 : 1862~1890년). 통일독일제국 수상(재임 :1871년~1890년)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1]급진개화파 세력이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2]온건개화파를 몰아내고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고종 21), 청나라는 [4]청불전쟁이 일어나자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군의 일부를 조선에서 철수시켰다. 이를 기회로 삼아 급진개화파는 일본공사의 협조를 얻어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우정국 낙성식이라 불린다)을 계기로 준비한 폭탄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폭탄이 불발되자 근처 민가에 불을 질러 축하연 연회장은 소란스러워 졌고, 이를 틈타 정변을 일으켰다.
급진 개화파 세력은 창덕궁에 있던 고종을 [3]경우궁으로 이동시켜 신병을 확보한 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들은 창덕궁으로 돌아와 개혁구상이 담긴 14개조 정강을 발표하는 등 개혁을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조선에 남아 있던 청나라군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12월 6일 청나라 병력이 창덕궁을 공격하자 불리함을 감지한 일본 공사는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철수시켰다. 급진개화파 군대는 청나라군과 응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여 흩어져 버렸다. 결국 급진 개화세력의 집권은 저녁 9시경에 시작되어 12월 6일 오후 7시경에 막을 내렸다. 정변이 진행된 시간은 46시간으로 만 이틀이 채 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서 청나라의 세력이 강대해진 가운데 청나라와 일본 두나라의 조선에 대한 쟁탈전은 더욱 격화되어 청일전쟁의 불씨가 된다.
정변 주동자는 인천항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김옥균을 제외하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김옥균은 암살되었고 서광범은 병사했으며 박영효는 친일 개화파로 변신하게 된다.
[14개조 정강] ①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도록 하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②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신분제 폐지). ③ 전국의 지조법(地組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한다(조세제도 개혁). ④ 내시부를 폐지하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는 등용한다(내시 제도 폐지). ⑤ 국가에 해독을 끼친 부정한 관리 중에서 그 죄가 심한 자는 처벌한다. ⑥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환곡제 폐지). ⑦ 규장각을 폐지한다(규장각은 세도 정치의 기반으로 변질). ⑧ 순사제도를 시급히 설치하여 도둑을 방지한다(근대적 경잘체도 도입). ⑨ 혜상공국을 혁파한다(특정상인의 특권 폐지). ⑩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⑪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군사제도 개혁). ⑫ 모든 국가 재정은 호조에서 관할하게 하며 그 밖의 재무 관청은 폐지한다(재정의 일원화). ⑬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입헌 군주제 실시). ⑭ 의정부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정부조직 개편).
[1] 급진개화파 : 일본의 메이지유신(문명개화론)을 모델로 삼아 급진적인 개혁 추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등 [2] 온건개화파 : 중국의 양무운동을 본받아 점진적인 개혁 주장. 김홍집, 김윤식등 [3] 경우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3대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사당 [4] 청불전쟁(1884년 8월 ~ 1885년 4월) : 베트남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놓고 프랑스와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