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己丑獄事)

대한민국 사건기간 : 1589년 10월, 조회수 : 139,   등록일 : 2021-03-04
1589년(선조 22)에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3년여에 걸쳐 그와 관련된 약1,000여명의 동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정여립은 관직을 단념하고 낙향(호남)하여 학문 연구와 대동계를 결성해 왜구를 소탕하기도 하였으나 서인세력에 의해 역모 준비를 위한 조직으로 간주되었고 급기야 정여립역모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 역모로 인하여 정여립은 피신하던 중 자결하였다. 
정여립의 자결과 일부 연루자의 자백에 의해 그가 역모를 꾀했다는 것이 그 당시에 사실로 단정되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에 따르면  조작설등 여러가지 주장이 공존하고 있으나 정설은 없다고 한다.

이후 이 사건으로 동인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지면서 3년여간 정여립과 연루되어 희생된 동인은 약1,000여 명에 이른다.
특히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은 정여립의 집에서 자신의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며 그의 형제·노모·자식까지도 모두 죽임을 당하면서 멸문했다

정여립(1546년~1589년) : 조선 중기의 문신
이발(1544년~1589년) : 조선 중기의 문신. 동인의 수장
동인 :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당파
대동계(大同契) : 조선시대 정여립의 역모사건의 증거로 거론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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