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운동

중국 사건기간 : 1919년 5월 4일~1919년 6월 28일, 조회수 : 377,   등록일 : 2020-08-03
일본은 1914년 8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뒤 1915년 1월 중국에 있던 독일의 [1]조차지 칭다오를 비롯한 산둥 반도를 점령하고 [2]위안스카이 베이징 정부에 이른바 '21개조 요구'를 제기했다. 요구의 핵심은 산둥에 있는 독일의 권리를 일본이 계승한다는 것이었다. 무기력한 위안스카이 중국정부는 1915년 5월 9일 일본의 최후통첩에 굴복하여 이를 수락했다. 
이듬해인 1916년 위안스카이가 사망한 후 [3]돤치루이가 정권을 장악한다.

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 [4]파리강화회담에서 연합국의 일원인 중국은 산둥지역의 주권을 회복하고 21개조 불평등 조약 철회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회담의 4월 21일 회의에서 일본의 주장이 승인되어 패전국인 된 독일의 권리를 일본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듣고 분개한 학생들은 5월 4일 약 3천여 명이 테안먼 광장에 모여 베이징학생선언을 배포하고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 시위를 시작으로 톈진, 상하이, 난징, 우한등 으로 확대되면서 전국적인 시위로 전개되었다.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중국 정부는 전 중국 민중 운동으로 확대되자 구속된 학생들을 석방하고 친일파 매국노를 파면시키고 6월 28일 파리강화회담의 베르사유조약 승인서명을 거부하였다. 이 조약 거부로 5월 4일이래 2개월간의 투쟁과 항쟁은 중국 정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칭다오는 1922년 워싱턴 조약으로 중국에게 반환되었다.

[1] 초차지 :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빌려 통치하는 영토. 영토권은 빌려준 나라에 속하지만, 통치권은 빌린 나라에 속한다[표준국어대사전]. 독일 제국이 1898년부터 1914년까지 청나라로부터 산둥 반도 이남을 임차받아 통치하고 있었다.
[2] 위안스카이(원세개, 1859년~1916년) : 중국 청나라 말기의 무관(武官), 군인이며 중화민국의 2대 임시대총통이며, 중화제국 초대이자 마지막 황제.
[3] 돤치루이(단기서, 1865년~1936년) : 1916년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총리가 되어 정권을 장악(북양정권)
[4] 파리강화회담 :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후 국제 질서 및 전쟁 관련 각종 사후 처리를 위해 승전국인 협상국과 패전국인 동맹국 사이에 이루어진 국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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