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건기간 : 2008년 9월 15일, 조회수 : 343, 등록일 : 2020-06-15
세계 4위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홀딩스 주식회사(Lehman Brothers Holdings Inc.)는 1850년에 설립된 국제 금융 회사였으며 미국 국채 시장의 주요 딜러이기도 헸다. 본사는 미국 뉴욕에 자리 잡고 있고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1850년에 설립된 리먼 브라더스는 미국 동부 시간으로 2008년 9월 15일, 약 6천억 달러(613 billion)에 이르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
당시 투자은행 랭킹에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와 4대 업체로 꼽혔던 글로벌 투자은행(IB)였던 만큼 그 여파는 컸다. 이러한 사태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임직원도 2만5000명에 달한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규모 파산으로 등재되었다.
*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투자은행
*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투자은행
* 메릴린치(Merrill Lynch) :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최대의 증권 회사. 2008년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인수되었으며 2019년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증권'으로 명칭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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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9.11 테러의 주범인 [2]알 카에다와 [1]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는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1세기 최초의 전쟁이자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미국의 목표는 [2]알카에다를 해체하고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쟁초반 미국의 대대적인 공세에 탈레반군은 순식간에 격멸당했다. 2001년 12월 14일에 미국은 승리 선언하였고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탈레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미국이 [5]이라크 전쟁에 전념하느라 아프카니스탄에 관심이 줄어든 틈을 타 탈레반은 전력을 재건하여 파키스탄 접경지대등을 기반으로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결국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병들이 파키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개전 당시의 병사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장교단도 물갈이가 됐으며 전쟁 초기에 출생하지도 않았던 세대가 미군 입대 가능 연령이 되면서 "한 세대의 전쟁(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흐름이 탈레반으로 넘어갔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은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8월 12일, 아프가니스탄의 제2, 3의 도시 헤라트와 칸다하르가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국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게 항복했다. 탈레반은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재집권했다.
이 전쟁으로 총사망자 23만명, 난민 500만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1]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1957년~2011년)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의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였으며 2001년 미국의 9.11 테러의 배후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2] 알카에다(Al-Qaeda) :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의 국제 무장 세력이자 테러리즘 집단이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이슬람권이나 혹은 이슬람과 타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역 위주로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서구에서도 알 카에다와 연결된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3] 탈레반(Taliban) :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무장단체이자 테러조직이며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하여 1997년에 아프카니스탄을 집권하여 통치하였으나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었다. 2021년 8월 미군의 철수로 정권을 다시 집권하였다
[4] 카불(Kabul) :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5] 이라크 전쟁(제2차 걸프 전쟁) :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되었다
미국은 알 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었던 상황에서 이라크가 유엔이 금지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분하에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두 개의 전선으로 확대되면서 전투는 이기지만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0년의 걸프 전쟁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났다고 해서 '제 2차 걸프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침략 2주만인 4월 9일에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함락되었고 후세인 정부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은 수도인 바그다드 함락 이후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 그해 12월에 미군 특수부대에 체포되어 2006년 11월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2006년 12월에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바그다드가 함락되면서 전쟁 종전 선언을 했지만 뒷수습하기엔 병력이 한없이 모자랐고 현지의 현황을 무시한 전후 처리로 인해 저항세력이 생겼다. 게다가 전쟁의 혼란으로 국경이 사실상 사라진 틈을 타고 각종 무장세력이 이라크를 기점으로 반미저항뿐 아니라 수니파와 시아파가 충돌하는 사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들 무장세력과도 싸워야만 했고, 이로인하여 매년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양 전선을 유지하기에 힘에 부친 미국은 2009년 7월부터 미국 병력이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철수를 준비하여 2010년 8월 20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8일 미국 병력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미국이 철수하자 이라크는 계속되는 갈등과 테러를 끝내지 못하며 내전으로 2017까지 휩싸이게 된다.
* 알카에다(Al-Qaeda) :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의 국제 무장 세력이자 테러리즘 집단이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이슬람권이나 혹은 이슬람과 타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역 위주로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서구에서도 알 카에다와 연결된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년~2006년) : 이라크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이라크의 정치인. 제5대 대통령(재임,1979년~2003년)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89년)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되었다. 당시 화재는 20시 40분경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이 붕괴되었고 이어 화재 5시간 만인 1시 54분 석축을 제외하고 1,2층이 모두 붕괴되었다.
방화범은 택지개발에 따른 토지보상에 불만을 갖고 방화를 저질렀다고 하며 방화 당시 쓰인 것은 겨우 시너가 담긴 1.5리터 페트병 3통과 라이터 하나였다고 한다.
방화후 5년뒤인 2013년 4월에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으로 만연한 부패와 족벌주의의 세바르드나제 정권을 무너뜨리고 2004년 1월 4일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1] 사카슈빌리가 압승하여 30대의 젊은 나이로 조지아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조지아는 장미혁명 이후에도 정치불안이 이어졌고 2006년 [2]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독립찬성결과로 끝나면서 잠재되어 있던 긴장이 고조된다. 러시아군이 남오세티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국제법상 조지아의 영토인 [2] 남오세티야를 러시아가 무단 점거한 침략이자 내정간섭이라 주장하였다. 하지만 남오세티야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자의 위치의 국가인 러시아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07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으며 [1] 사카슈빌리는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2008년 1월 재선에 성공했지만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강한 친미, 친유럽주의 성향의 사카슈빌리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지아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4] 베이징 올림픽 개최 하루전인 2008년 8월 7일 조지아는 미국을 믿고 남오세티야를 침공하였다. 이때 평화유지군으로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하였다.
8월 8일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8월11~12일에 러시아군이 츠한발리 지역을 벗어나 총 공세를 개시하면서 조지아군의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사실상 항복했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고 수도인 [6] 트빌리시 앞까지 진격하여 조지아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결국 미국이 조지아에 개입할 것을 선언하였다. 일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한 러시아는 유럽연합 의장국인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긴급중재한 평화교섭에 합의하였다. 러시아는 군대를 조지에서 철수시키며 종전을 선언하였다.
조지아는 참패의 결과로 [2] 남오세티야와 [5] 압하지야는 실질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러시아-조지아 전쟁(Russo-Georgian War)으로도 불린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제43대 조지부시(George W. Bush)였으며 러시아는 제2대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었다.
[1]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1967~현존) : 조지아의 제3대 대통령(임기 : 2004년~2013년, 2008년 재선).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정치가(우크라이나 국적 부여받자 이중 국적을 제한하는 조지아법에 의해 조지아국적 박탈당함)
[2] 남오세티야(South Ossetia) 또는 츠힌발리(Tskhinvali) : 조지아에 위치한 사실상의 독립상태로 통치되는 지역이자 미승인 국가로 수도는 츠힌발리이다. 정식 국호는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Republic of South Ossetia–The State of Alania)
[3] 츠힌발리(Tskhinvali) : 조지아의 중부에 위치하며 남오세티야의 수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로부터는 약 100km 떨어져 있다
[4]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기간 : 2008년 8월 8일 ~ 2008년 8월 24일
[5] 압하지야(Abkhazia) : 흑해의 남쪽 연안과 캅카스의 남서쪽에 위치한 미승인 국가로 압하지야인이 주로 거주한다. 수도는 수후미(Sukhumi)이며 조지아의 영토내에 있는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
[6] 트빌리시(Tbilisi) : 조지아의 수도
인도 뭄바이 테러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인도 최대 도시인 [1]뭄바이에서 대규모 무장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는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 [2]라쉬카르-에-타이바 소속 무장대원 10명이 계획적으로 실행한 동시다발적 테러와 인질극으로 [3]타지마할 팰리스 호텔, [4]나리만 하우스, [5]차트라파티 시바지 터미널, [6]레오폴드 카페 등 여러 주요 장소에서 벌어졌다. 이 테러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뭄바이 테러는 인도-파키스탄 간 갈등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활동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1]뭄바이를 경제적, 상징적 중심지로 인도에 대한 정치적·종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11월 26일 테러범 10명은 해상으로 [1]뭄바이에 밀입국하여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공격을 시작했다. [5]차트라파티 시바지 터미널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수십 명이 희생되었다. 관광객이 많은 [6]레오폴드 카페에서 총격이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테러범들은 [3]타지마할 팰리스 호텔과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호텔을 점거하고, 외국인 관광객과 인도 시민들을 인질로 삼았다. 60시간에 걸친 대치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호텔 일부가 불에 탔다. 유대인 센터인 [4]나리만 하우스에서도 무장대원들이 인질을 잡고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질과 구출 작전을 벌이던 경찰이 사망했다.
이 테러로 인하여 사망자는 175명(테러범 9명 포함), 부상자는 330여 명으로 피해 규모는 호텔과 공공시설 파손으로 관광 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테러 직후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국제 사회는 테러와의 전쟁과 국경 간 테러리즘 문제를 강력히 비난했다. 유일한 테러범 생존자인 아즈말 카사브(Ajmal Kasab)는 체포되어 2012년에 처형되었다.
뭄바이 테러는 인도의 안보 정책에 변화를 주었고, 대 테러 대응 시스템의 강화로 이어졌다. 또한 국제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테러리즘에 대한 위협을 다시 일깨우며 여러 나라에서 보안 조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 뭄바이(Mumbai) : 인도 서부 아라비아해 연안에 접한 항구 도시. 인도의 경제·금융·문화 중심지이자 최대 도시로, 영화산업과 항만 도시로 세계적 중요성을 지닌 대도시 [2] 라쉬카르-에-타이바(Lashkar-e-Taiba) :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인도 카슈미르 분쟁과 대 인도 테러 활동에 관여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3] 타지마할 팰리스 호텔(The Taj Mahal Palace, Mumbai) : 인도 뭄바이의 고급 호텔. 호텔 건물은 100년이 넘었고, 565개의 객실이 있다. 1903년에 오픈했다 [4] 나리만 하우스(Nariman House) : 뭄바이에 위치한 유대인 문화센터 및 종교 시설 [5] 차트라파티 시바지 터미널(CST, Chhatrapati Shivaji Terminal) : 인도 뭄바이의 주요 역사적 기차역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6] 레오폴드 카페(Leopold Cafe & Bar) : 인도 뭄바이에 있는 식당이자 카페 [7] 카슈미르(Kashmir) : 인도-파키스탄 국경과 인도-중국 국경 지역.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을 두고 벌이는 장기적 갈등으로, 종교적·민족적 대립과 국경 분쟁이 얽힌 남아시아의 핵심 분쟁지역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Gaza)와 서안지구(West Bank)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다. 반면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탈레스타인 자치정부인 파타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가자 전쟁은 파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 공격을 하자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가자지구를 공습하여 시작되었다. 1차 가자전쟁이라고도 한다.
전황은 이스라엘의 우세로 가자지구를 초토화 시킨뒤 철수하였다. 이 전쟁은 2009년 1월 18일 양측이 휴전을 선언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13명 사망, 523명 부상자, 가자지구는 1,380명 사망, 5,380명이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 파타(PA,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서 활동 * 하마스(Hamas) :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로 팔레스타인 정당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듬해 파타정권(PA)은 이에 반발하여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의 결과로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했다 *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자 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 가자 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18%인 A지역은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22%인 B지역은 치안을 제외한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60%인 C지역은 이스라엘이 통치하고 있다 * 가자 지구(Gaza Strip) :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통치 지역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