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가인도네시아사건기간 : 2004년 12월 26일, 조회수 : 451, 등록일 : 2020-06-07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아체주 서부 해안에 발생한 규모 M9.1-9.3의 초대형 해저 지진으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쓰나미에 의해 발생했다.
이 지진 해일로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전 세계에서 28만명 이상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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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 [2]아리엘 샤론 총리는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 성지인 [3]알 아크사 모스크를 군과 경찰등의 호위병을 대동하여 방문했다.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에 이스라엘측은 즉각적인 사격으로 대응하여 팔레스타인인 13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더욱이 2000년 9월 30일 아버지와 외출하였던 12살 어린이인 무함마드 라미 알 두라 소년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희생된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 군중과 이스라엘군 사이에 갇힌 아버지와 아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TV를 통하여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사건으로 팔레스타인과 전 세계는 이스라엘에 분노하였다.
이로 인하여 [8]오슬로 평화협정이 파기됐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봉기한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를 막기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다시 점령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이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경찰까지 민중봉기에 참여하여 준전쟁 상태로 발전하면서 요르단 강 [7]서안지구, [9]가자지구의 주민과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까지 합세하여 대규모로 파급되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선, [5]하마스, 이슬람 [6]지하드 등의 무장단체들도 전부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자살폭탄테러와 요인암살을 하면서 민족봉기를 자극했다.
팔레스타인 대통령 선거는 2005년 1월 9일에 치러졌고, [4]마흐무드 압바스(Abu Mazen)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05년 2월 8일 [2]아리엘 샤론과 [4]마흐무드 압바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을 선언했다. 서로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로 하였으며 이스라엘측은 정치범을 제외한 팔레스타인 포로를 석방하며 [7]서안지구에서 철수하는데 동의했다. 팔레스타인측도 봉기와 게릴라전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5]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6]지하드도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2차 인티파다는 끝난다.
2차 인티파다로 팔레스타인은 3,334명이 사망하고 5만 3천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 역시 피해가 만만치 않아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074명이 사망했다.
[1]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년~2004년) :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초대 수반(임기 1994년 7월 5일~ 2004년 11월 11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제3대 정부수반(임기 1969년 2월 4일~2004년 10월 29일) [2]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1928년~2014년) : 이스라엘 제15대 총리(임기 2001년 3월 7일~2006년 4월 14일) [3] 알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 : 예루살렘의 성전산 남쪽에 위치한 은색 둥근 지붕의 이슬람교 사원.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 [4]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1935년~) : 2003년에는 팔레스타인 수상에 임명되었지만 사직. 2004년 아라파트 사망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 2005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7년 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다 [5] 하마스(Hamas) :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로 팔레스타인 정당으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듬해 파타정권(PA)은 이에 반발하여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의 결과로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했다 [6] 지하드(jihad) : '성전'이라는 뜻으로, 이슬람교의 신앙을 전파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벌이는 이교도와의 투쟁을 이르는 말 [7] 서안지구(West Bank)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자 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 가자 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18%인 A지역은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22%인 B지역은 치안을 제외한 파레스타인 자치지역, 60%인 C지역은 이스라엘이 통치하고 있다 [8] 오슬로협정(Oslo Accords) : 1993년 9월13일에 이스라엘과 분쟁을 계속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분쟁을 종식키로 한 평화협정 [9] 가자지구(Gaza Strip) :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통치 지역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접해 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9.11 테러의 주범인 [2]알 카에다와 [1]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는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1세기 최초의 전쟁이자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미국의 목표는 [2]알카에다를 해체하고 [3]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쟁초반 미국의 대대적인 공세에 탈레반군은 순식간에 격멸당했다. 2001년 12월 14일에 미국은 승리 선언하였고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탈레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미국이 [5]이라크 전쟁에 전념하느라 아프카니스탄에 관심이 줄어든 틈을 타 탈레반은 전력을 재건하여 파키스탄 접경지대등을 기반으로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결국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병들이 파키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개전 당시의 병사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장교단도 물갈이가 됐으며 전쟁 초기에 출생하지도 않았던 세대가 미군 입대 가능 연령이 되면서 "한 세대의 전쟁(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흐름이 탈레반으로 넘어갔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은 탈레반의 수중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8월 12일, 아프가니스탄의 제2, 3의 도시 헤라트와 칸다하르가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국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게 항복했다. 탈레반은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재집권했다.
이 전쟁으로 총사망자 23만명, 난민 500만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1]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1957년~2011년)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의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였으며 2001년 미국의 9.11 테러의 배후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2] 알카에다(Al-Qaeda) :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의 국제 무장 세력이자 테러리즘 집단이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이슬람권이나 혹은 이슬람과 타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역 위주로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서구에서도 알 카에다와 연결된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3] 탈레반(Taliban) :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무장단체이자 테러조직이며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하여 1997년에 아프카니스탄을 집권하여 통치하였으나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었다. 2021년 8월 미군의 철수로 정권을 다시 집권하였다
[4] 카불(Kabul) :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5] 이라크 전쟁(제2차 걸프 전쟁) :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되었다
미국은 알 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었던 상황에서 이라크가 유엔이 금지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분하에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두 개의 전선으로 확대되면서 전투는 이기지만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0년의 걸프 전쟁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났다고 해서 '제 2차 걸프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침략 2주만인 4월 9일에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함락되었고 후세인 정부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은 수도인 바그다드 함락 이후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 그해 12월에 미군 특수부대에 체포되어 2006년 11월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2006년 12월에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바그다드가 함락되면서 전쟁 종전 선언을 했지만 뒷수습하기엔 병력이 한없이 모자랐고 현지의 현황을 무시한 전후 처리로 인해 저항세력이 생겼다. 게다가 전쟁의 혼란으로 국경이 사실상 사라진 틈을 타고 각종 무장세력이 이라크를 기점으로 반미저항뿐 아니라 수니파와 시아파가 충돌하는 사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들 무장세력과도 싸워야만 했고, 이로인하여 매년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양 전선을 유지하기에 힘에 부친 미국은 2009년 7월부터 미국 병력이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철수를 준비하여 2010년 8월 20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8일 미국 병력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미국이 철수하자 이라크는 계속되는 갈등과 테러를 끝내지 못하며 내전으로 2017까지 휩싸이게 된다.
* 알카에다(Al-Qaeda) :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의 국제 무장 세력이자 테러리즘 집단이며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 차드, 수단, 필리핀, 태국 등 이슬람권이나 혹은 이슬람과 타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역 위주로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서구에서도 알 카에다와 연결된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년~2006년) : 이라크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이라크의 정치인. 제5대 대통령(재임,1979년~2003년)
우쿠라이나 [1]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서 2004년 대선은 레오니드 쿠치마정권의 총리인 [2]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에 맞서는 야당 후보로 [3]빅토르 유셴코가 있었다. 빅토르 유셴코는 민주화의 여망을 실현시킬 인물로 각광받던 인물이었다.
2004년 10월 31일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가 없어 1,2위를 차지한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빅토르 유셴코는 11월 21일 2차선거(결선투표)에서 재격돌했다. 결선투표 결과 야누코비치가 49.53%, 유셴코가 46.66%의 특표율로 야누코비치가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대규모 부정선거로 얼룩짐에 따라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오렌지 혁명'은 시작됐다.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독립) 광장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 수십만이 모였다. 유셴코 진영은 자신들의 상징으로 오렌지색을 사용하였다. 이제 오렌지색은 자유와 정의의 색깔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최고 재판소는 유권자들의 투표와 예비 집계 과정 중에 위반사실을 확인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차 선거 결과에 대한 발표를 취소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다시 거행하도록 명령했다.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속에 12월 26일에 치러진 재선거 결과 유셴코가 51.99%로 승리했다. 유셴코가 한 달 뒤 대통령에 취힘함으로써 오렌지 혁명은 끝이 났다.
[1] 레오니드 쿠치마(Leonid Kuchma, 1938년~현존) : 우크라이나의 제2대 대통령(임기:1994년 7월 19일~2005년 1월 23일)
[2] 빅토르 유셴코(Viktor Yushchenko, 1954년~현존) : 우크라이나의 제3대 대통령(임기:2005년 1월 23일~2010년 2월 25일)
[3]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1950년~현존) : 우크라이나의 제4대 대통령(임기:2010년 2월 25일~2014년 2월 22일). 5년 임기중 탄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