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甲申政變)

대한민국 사건기간 : 1884년 12월 4일~1884년 12월 6일, 조회수 : 279,   등록일 : 2020-05-02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1]급진개화파 세력이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2]온건개화파를 몰아내고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고종 21), 청나라는 [4]청불전쟁이 일어나자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군의 일부를 조선에서 철수시켰다. 이를 기회로 삼아 급진개화파는 일본공사의 협조를 얻어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우정국 낙성식이라 불린다)을 계기로 준비한 폭탄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폭탄이 불발되자 근처 민가에 불을 질러 축하연 연회장은 소란스러워 졌고, 이를 틈타 정변을 일으켰다. 

급진 개화파 세력은 창덕궁에 있던 고종을 [3]경우궁으로 이동시켜 신병을 확보한 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들은 창덕궁으로 돌아와 개혁구상이 담긴 14개조 정강을 발표하는 등 개혁을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조선에 남아 있던 청나라군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12월 6일 청나라 병력이 창덕궁을 공격하자 불리함을 감지한 일본 공사는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철수시켰다. 
급진개화파 군대는 청나라군과 응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여 흩어져 버렸다.
결국 급진 개화세력의 집권은 저녁 9시경에 시작되어 12월 6일 오후 7시경에 막을 내렸다. 정변이 진행된 시간은 46시간으로 만 이틀이 채 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서 청나라의 세력이 강대해진 가운데 청나라와 일본 두나라의  조선에 대한 쟁탈전은 더욱 격화되어 청일전쟁의 불씨가 된다.

정변 주동자는 인천항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김옥균을 제외하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김옥균은 암살되었고 서광범은 병사했으며 박영효는 친일 개화파로 변신하게 된다.

 [14개조 정강]
①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도록 하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②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신분제 폐지).
③ 전국의 지조법(地組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한다(조세제도 개혁).
④ 내시부를 폐지하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는 등용한다(내시 제도 폐지).
⑤ 국가에 해독을 끼친 부정한 관리 중에서 그 죄가 심한 자는 처벌한다.
⑥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환곡제 폐지).
⑦ 규장각을 폐지한다(규장각은 세도 정치의 기반으로 변질).
⑧ 순사제도를 시급히 설치하여 도둑을 방지한다(근대적 경잘체도 도입).
⑨ 혜상공국을 혁파한다(특정상인의 특권 폐지).
⑩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⑪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군사제도 개혁).
⑫ 모든 국가 재정은 호조에서 관할하게 하며 그 밖의 재무 관청은 폐지한다(재정의 일원화).
⑬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입헌 군주제 실시).
⑭ 의정부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정부조직 개편).

[1] 급진개화파 : 일본의 메이지유신(문명개화론)을 모델로 삼아 급진적인 개혁 추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등
[2] 온건개화파 : 중국의 양무운동을 본받아 점진적인 개혁 주장. 김홍집, 김윤식등
[3] 경우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3대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사당
[4] 청불전쟁(1884년 8월 ~ 1885년 4월) : 베트남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놓고 프랑스와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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