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야 전쟁(Russo-Georgian War)

러시아 조지아 사건기간 : 2008년 8월 7일~2008년 8월 12일, 조회수 : 479,   등록일 : 2020-04-29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으로 만연한 부패와 족벌주의의 세바르드나제 정권을 무너뜨리고 2004년 1월 4일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1] 사카슈빌리가 압승하여 30대의 젊은 나이로 조지아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조지아는 장미혁명 이후에도 정치불안이 이어졌고 2006년 [2]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독립찬성결과로 끝나면서 잠재되어 있던 긴장이 고조된다. 러시아군이 남오세티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조지아 입장에서는 국제법상 조지아의 영토인 [2] 남오세티야를 러시아가 무단 점거한 침략이자 내정간섭이라 주장하였다. 하지만 남오세티야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자의 위치의 국가인 러시아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07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으며 [1] 사카슈빌리는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2008년 1월 재선에 성공했지만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강한 친미, 친유럽주의 성향의 사카슈빌리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지아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4] 베이징 올림픽 개최 하루전인 2008년 8월 7일 조지아는 미국을 믿고 남오세티야를 침공하였다. 이때 평화유지군으로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하였다.
8월 8일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본격 충돌이 시작되었다.
8월11~12일에 러시아군이 츠한발리 지역을 벗어나 총 공세를 개시하면서 조지아군의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조지아는 러시아에게 사실상 항복했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고 수도인 [6] 트빌리시 앞까지 진격하여 조지아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결국 미국이 조지아에 개입할 것을 선언하였다. 일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한 러시아는 유럽연합 의장국인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긴급중재한 평화교섭에 합의하였다. 러시아는 군대를 조지에서 철수시키며 종전을 선언하였다.

조지아는 참패의 결과로 [2] 남오세티야와 [5] 압하지야는 실질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러시아-조지아 전쟁(Russo-Georgian War)으로도 불린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제43대 조지부시(George W. Bush)였으며 러시아는 제2대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었다.

[1]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1967~현존) : 조지아의 제3대 대통령(임기 : 2004년~2013년, 2008년 재선).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정치가(우크라이나 국적 부여받자 이중 국적을 제한하는 조지아법에 의해 조지아국적 박탈당함)
[2] 남오세티야(South Ossetia) 또는 츠힌발리(Tskhinvali) : 조지아에 위치한 사실상의 독립상태로 통치되는 지역이자 미승인 국가로 수도는 츠힌발리이다. 정식 국호는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Republic of South Ossetia–The State of Alania)
[3] 츠힌발리(Tskhinvali) : 조지아의 중부에 위치하며 남오세티야의 수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로부터는 약 100km 떨어져 있다
[4]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기간 : 2008년 8월 8일 ~ 2008년 8월 24일
[5] 압하지야(Abkhazia) : 흑해의 남쪽 연안과 캅카스의 남서쪽에 위치한 미승인 국가로 압하지야인이 주로 거주한다. 수도는 수후미(Sukhumi)이며 조지아의 영토내에 있는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
[6] 트빌리시(Tbilisi) : 조지아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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