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89   등록일 : 2024-06-30 ]
영릉(英陵)은 조선 4대 국왕인 [1]세종과 부인 [4]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능이다.
 
세종은 [2]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1408년(태종 8) 충녕군에, 1412년(태종 12) 대군에 봉해졌다. 
1418년 큰형 양녕대군이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두 달 후 태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고유한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4군 6진을 개척하여 북방국경을 확장하였다. 또 천문과 역법, 금속활자와 인쇄술, 도량형, 농법 등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음악과 의례를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4]소헌왕후 심씨는청천부원군 [5]심온의 딸로 1408년 세종과 혼인하였고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시아버지인[2] 태종의 외척세력 견제로 인해 세종재위 초반에 친정이 화를 입었고 본인도 왕비 자리에서 물러날 뻔했으나 세종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8남(문종·세조·안평·임영·광평·금성·평원·영응대군) 2녀(정소·정의공주)를 낳았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헌릉과 인릉(서울 서초구소재)경내 인릉자리에 영릉을 조성하였고, 이때 세종의 능자리도 미리 마련하였다.
1450년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합장하여 영릉은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1469년([3]예종 1) 현재의 자리로 능을 옮겼다. 
현재의 석물은 모두 예종 대에 능을 옮기면서 새로 제작한 것으로, 영릉 봉분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6]난간석만 둘렀으며 난간석에 [8]십이지 문자를 새겼다.
[7]혼유석은 2좌를 배치하였는데 이는 조선 전기 합장릉에 보이는 특징이다.
 
이후 1970년대의 성역화 사업과 2014년부터 2020년까지의 유적종합정비사업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정비되었다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능으로 영릉(驪州)과 지척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여주 영릉과 영릉 (驪州 英陵과 寧陵)" 안내책자
 
[1] 세종(世宗, 1397년~1450년) : 조선 제4대 국왕(재위 1418년~1450년)
[2] 태종(太宗, 1367년~1422년) : 조선 제3대 국왕(재위 1400년~1418년).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다
[3] 예종(睿宗, 1450년~1470년) : 조선 제8대 국왕, 1468년에 즉위하였으나 1년 6개월만에 사망하였다(재위 1468년~1470년)
[4]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년~1446년) : 조선 세종의 왕비
[5] 심온(沈溫: 1375년~1419년) : 고려 시대 말기와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 1418년 9월 세종의 장인(국구)이 되자 천부원군(靑川府院君)으로 봉작됨과 동시에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태종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사사되었다
[6] 난간석(欄干石) : 외부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봉분 둘레를 장식하는 석물
[7] 혼유석(魂遊石) :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으로 '영혼이 노는 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8] 십이지(十二支) :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술(戌), 해(亥)
즉위도 : 1418년 8월 18일 경복궁 근정정에서 거행된 세종대왕의 즉위모습(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촬영일 : 2024-06-16]
즉위도 : 1418년 8월 18일 경복궁 근정정에서 거행된 세종대왕의 즉위모습(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세종대왕 영정(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 영정(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세계유산 조선왕릉
[촬영일 : 2024-06-16]
세계유산 조선왕릉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세종대왕상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세종대왕상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관천대 - 천문관측기기를 올려놓던 곳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관천대 - 천문관측기기를 올려놓던 곳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혼천의 - 해와 달, 별과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체 관측기기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혼천의 - 해와 달, 별과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체 관측기기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간의 :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천문 관측기기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간의 :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천문 관측기기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소간의 - 간의를 옮길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개량한 천문 관측 기기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소간의 - 간의를 옮길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개량한 천문 관측 기기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규표 - 해의 그림자를 재어 24절기를 알 수 있게 만든 천문 관측 기기.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짧은 날이 하지이다. 이 때 동지와 다음 동지의 간격을 재어 일 년의 길이를 결정할 수 있고,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24절기를 알 수 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규표 - 해의 그림자를 재어 24절기를 알 수 있게 만든 천문 관측 기기.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짧은 날이 하지이다. 이 때 동지와 다음 동지의 간격을 재어 일 년의 길이를 결정할 수 있고,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24절기를 알 수 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현주일구 - 휴대용 해시계.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같게 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긴 후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간에 나타나게 하여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시각을 알 수 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현주일구 - 휴대용 해시계.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같게 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긴 후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간에 나타나게 하여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시각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정남일구 -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려주는 해시계.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남쪽을 가리키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정남일구 -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려주는 해시계.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남쪽을 가리키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일성정시의 -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낮과 밤 언제든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문 기기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일성정시의 -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낮과 밤 언제든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문 기기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자격루 - 물시계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사용되었다. 작동원리는 맨 위의 큰 물그릇에 있는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더 아래쪽에 있는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있는 살대가 점점 올라가 지렛대 장치를 건드리면서 끝에 있는 쇠구슬을 구멍으로 굴려넣는다.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 차례로 종과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자격루 - 물시계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사용되었다. 작동원리는 맨 위의 큰 물그릇에 있는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더 아래쪽에 있는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있는 살대가 점점 올라가 지렛대 장치를 건드리면서 끝에 있는 쇠구슬을 구멍으로 굴려넣는다.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 차례로 종과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천평일구 - 휴대용 해시계로 용기둥에서 남쪽 못까지 연결된 실이 하늘의 적도면과 나란하게 놓여 있는 시반면(시각과 절기가 그려진 받침대)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며 해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나타난 그림자로 시각을 알 수 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천평일구 - 휴대용 해시계로 용기둥에서 남쪽 못까지 연결된 실이 하늘의 적도면과 나란하게 놓여 있는 시반면(시각과 절기가 그려진 받침대)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며 해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나타난 그림자로 시각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일구대 -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올려놓는 받침대. 세종대왕은 서울의 혜정교와 종묘앞에 일구대를 만들고 앙부일구를 설치했다. 이것은 현재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에 있는 '앙부일구대'를 본떠 1988년 11월에 만들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일구대 -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올려놓는 받침대. 세종대왕은 서울의 혜정교와 종묘앞에 일구대를 만들고 앙부일구를 설치했다. 이것은 현재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에 있는 '앙부일구대'를 본떠 1988년 11월에 만들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앙부일구 - 우라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 앙부일구란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솥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하다 해서 일명'오목해시계'라고도 한다. 오목한 반구 안쪽에는 영침(쇠바늘)과 달력 역할을 하는 가로줄 13줄과 시각을 알려주는 세로줄 48줄이 있다. 영침의 그림자가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와 시각을 나타낸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앙부일구 - 우라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 앙부일구란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솥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하다 해서 일명'오목해시계'라고도 한다. 오목한 반구 안쪽에는 영침(쇠바늘)과 달력 역할을 하는 가로줄 13줄과 시각을 알려주는 세로줄 48줄이 있다. 영침의 그림자가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와 시각을 나타낸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천상열차분야지도 -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별 1,467개의 위치를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만든 천문도이다. 윗 부분에는 해와 달의 운행 기록과 별자리 그림. 아랫부분에는 우주관, 제작배경,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적혀있다. 이것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본떠 1999년 5월에 만들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천상열차분야지도 -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의 좌표에 따라 별 1,467개의 위치를 커다란 원 안에 표시하여 만든 천문도이다. 윗 부분에는 해와 달의 운행 기록과 별자리 그림. 아랫부분에는 우주관, 제작배경,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과 만든 때가 적혀있다. 이것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본떠 1999년 5월에 만들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측우기 - 비의 양을 재고자 만든 기기. 이전에는 땅속에 스며 든 빗물의 깊이를 자로 쟀었는데, 쇠로 된 원통형 측우기를 만들어 비의 양을 정확히 잴 수 있게 했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측우기 - 비의 양을 재고자 만든 기기. 이전에는 땅속에 스며 든 빗물의 깊이를 자로 쟀었는데, 쇠로 된 원통형 측우기를 만들어 비의 양을 정확히 잴 수 있게 했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수표 -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해 하천의 물높이를 재던 기기이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수표 -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해 하천의 물높이를 재던 기기이다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풍기대 -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잴 때 쓰는 바람깃발을 세워놓던 받침대이다. 맨 위에 깃대를 세워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쟀다
[촬영일 : 2024-06-16]
세종대왕릉내의 광장 : 풍기대 -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잴 때 쓰는 바람깃발을 세워놓던 받침대이다. 맨 위에 깃대를 세워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쟀다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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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 : 2024-06-16]
영릉재실(英陵齋室) : 왕을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등이 지내던 곳. 재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영릉재실(英陵齋室) :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대 성역화 사업때 현 위치에 삼문과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되었다
[촬영일 : 2024-06-16]
(구)영릉재실(英陵齋室) :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대 성역화 사업때 현 위치에 삼문과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되었다
(구)영릉재실(英陵齋室) :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대 성역화 사업때 현 위치에 삼문과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되었다
[촬영일 : 2024-06-16]
(구)영릉재실(英陵齋室) :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대 성역화 사업때 현 위치에 삼문과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되었다
위토답(位土畓) : 위토는 제사나 관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토지를 말하며 논은 위토답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왕릉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과 관리 이력을 기록한 '농지'등에는 각 능·원·묘에 위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 열릉의 위토답은 능제복원을 위한 영·영릉 유적 종합정비사업으로 조성되었으면 규모는 1,300제곱미터정도이다
[촬영일 : 2024-06-16]
위토답(位土畓) : 위토는 제사나 관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토지를 말하며 논은 위토답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왕릉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과 관리 이력을 기록한 '농지'등에는 각 능·원·묘에 위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 열릉의 위토답은 능제복원을 위한 영·영릉 유적 종합정비사업으로 조성되었으면 규모는 1,300제곱미터정도이다
여주영릉(驪州 英陵)의 연지
[촬영일 : 2024-06-16]
여주영릉(驪州 英陵)의 연지
여주영릉(驪州 英陵)의 홍살문(紅살門) : 홍살문은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성한 곳으로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촬영일 : 2024-06-16]
여주영릉(驪州 英陵)의 홍살문(紅살門) : 홍살문은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성한 곳으로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여주영릉(驪州英陵)의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길(왼쪽).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오른쪽)
[촬영일 : 2024-06-16]
여주영릉(驪州英陵)의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길(왼쪽).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오른쪽)
영릉(英陵) 수복방(守僕房) :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능지기인 수복들이 사용하던 건물
[촬영일 : 2024-06-16]
영릉(英陵) 수복방(守僕房) :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능지기인 수복들이 사용하던 건물
영릉(英陵) 수복방(守僕房) :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하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동남쪽의 수복방과 대칭해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英陵) 수복방(守僕房) :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하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동남쪽의 수복방과 대칭해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릉비각(英陵碑閣) :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장
[촬영일 : 2024-06-16]
영릉비각(英陵碑閣) :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장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 제향을 하는 곳이다. 정자각이란 이름은 건물 모양이 '정(丁)' 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 제향을 하는 곳이다. 정자각이란 이름은 건물 모양이 '정(丁)' 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 제향을 하는 곳이다. 정자각이란 이름은 건물 모양이 '정(丁)' 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 제향을 하는 곳이다. 정자각이란 이름은 건물 모양이 '정(丁)' 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영릉 (英陵) :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촬영일 : 2024-06-16]
영릉 (英陵) :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에서 고개를 숙여야 맞은편의 능을 바라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4-06-16]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에서 고개를 숙여야 맞은편의 능을 바라 볼 수 있다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내부
[촬영일 : 2024-06-16]
영릉 정자각(英陵 丁字閣) 내부
왕의 숲길 : 세종대왕 영릉(英陵)과 효종대왕 영릉(寧陵)을 연결하는 길로 조선왕조실록에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0년 정조 임금이 직접 행차하여 영릉(寧陵)을 먼저 참배한 후 영릉(英陵)을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촬영일 : 2024-06-16]
왕의 숲길 : 세종대왕 영릉(英陵)과 효종대왕 영릉(寧陵)을 연결하는 길로 조선왕조실록에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0년 정조 임금이 직접 행차하여 영릉(寧陵)을 먼저 참배한 후 영릉(英陵)을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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